지난 2013년, 로마 유학 시절 저는 우연히 역사적인 순간의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 있던 그날,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이라는 라틴어 선언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순간이 있기까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비밀스러운 회의 ‘콘클라베(Conclave)’에 대해 오늘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콘클라베’ 무엇인가?
‘콘클라베’ 라틴어로 ‘열쇠로 잠긴 방’이라는 뜻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모이는 비밀 회의를 말합니다. 교황이 서거하거나 사임한 후 15~20일 내에 80세 미만의 모든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진행하는 이 의식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가톨릭교회의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전통 중 하나입니다.
제가 로마에서 지내던 2013년 2월,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생전 사임 발표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약 600년 만의 교황 생전 사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월 12일, 115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가 시작되었습니다.
콘클라베의 비밀스러운 절차
“엑스트라 옴네스(Extra Omnes, 모두 나가라)!”라는 외침과 함께 시스티나 성당의 문이 닫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추기경단만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바티칸 근처 카페에서 만난 한 신학자의 설명으로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추기경들은 하루에 최대 4번의 투표를 진행합니다.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교황 후보의 이름을 적고,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증인으로 하여, 내 판단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투표함을 맹세합니다”라고 선서한 후 투표함에 용지를 넣게됩니다.
한 후보가 전체 투표의 3분의 2 이상을 획득하면 새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투표 결과를 알리는 방식입니다. 투표가 끝날 때마다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가, 선출되면 하얀 연기가 나오게됩니다. 이는 화학 물질을 섞어 인위적으로 연기 색을 조절한 결과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2025년 콘클라베
최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88세의 나이로 선종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가 이르면 5월 6일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교황이 선종한 후 15~20일 사이에 콘클라베를 개시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대다수 외신은 5월 6~11일 사이에 콘클라베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번 콘클라베에는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참여할 예정인데, 이는 베네딕토 교황이 정한 전통적인 120명 제한을 초과한 숫자입니다. 지역별로는 유럽 출신 53명, 아시아 23명, 중남미 21명 등이 참여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에서 10명, 브라질에서 7명, 필리핀에서 3명, 멕시코에서 2명의 추기경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콘클라베 준비는 시작되었습니다. 추기경단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튿날인 4월 22일 첫 일반 회의를 열어 콘클라베까지 일정과 실무 계획, 이슈, 우선순위, 주목할 인물 등을 논의했습니다.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들 대부분이 4월 28일 경 로마에 집결하면서 회의는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2025 콘클라베 유력 후보자들
차기 교황 후보로는 여러 추기경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계속 이끌어갈 후보로는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 장마르크 아벨린(프랑스) 추기경, 마테오 마리아 주피(이탈리아) 추기경 등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도 거론되지만, 홍콩의 젠 추기경은 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 빌라노바 대학의 마시모 파지올리 신학 교수는 “이번 콘클라베는 유권자 수와 지리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합의 도달이 더 어려울 수 있다”며 “참가자들이 많고 서로를 잘 알지 못해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통계로 보는 콘클라베
역사적으로 콘클라베는 평균 약 3일이 소요되지만, 가장 긴 콘클라베는 1268년부터 1271년까지 무려 2년 9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반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콘클라베는 단 2일만에 끝났는데, 이는 최근 50년 내 가장 짧은 콘클라베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 가톨릭 신자는 약 13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2025년 기준 전체 추기경 252명 중 콘클라베에 참여할 수 있는 80세 미만 추기경은 135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 유럽 출신이 53명(약 39%)으로 가장 많고, 아시아와 중남미가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전 세계 가톨릭 신자 분포와는 큰 차이가 있어 ‘콘클라베의 다양성’ 문제가 종종 제기되기도 합니다.
교황 선출, 그 이상의 의미
콘클라베는 단순한 선거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신성한 과정으로 여기게됩니다. 추기경들이 기도와 묵상을 통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이 과정은, 세속적인 정치 행사와는 다른 차원의 경건함을 지니기도합니다.
지금 전 세계의 시선은 바티칸의 작은 굴뚝을 향해 있다. 어떤 추기경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될지, 그리고 그가 어떤 방향으로 14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끌어갈지 지켜보는 일은 종교를 넘어 세계사적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3년 제가 경험했던 그 역사적 순간이 또다시 전 세계에 펼쳐질 날이 머지않았습니다.